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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나와 영화 | 곽선생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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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벼리 작성일15-09-17 00:10 조회2,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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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생 아줌마

 

김지현(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곽선생 아줌마는 예전에 엄마가 운영하던 미싱자수학원의 강사였다. 곽선생으로 불리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곽선생 아줌마로 호칭이 바뀐 걸 텐데, 지금은 침놓는 일을 하신다. 나는 요즘 아줌마한테 치료를 받는데, 그 얘길 하면 주변에서 한 마디씩 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애인처럼 동네 사람 침놔주고 그러는 거? 그거 야매잖아. 왜 그런 델 다녀?” 지금부터 그 자세한 얘길 하려고 한다. 

   지난 6월 14일, 집 계단에서 미끄러졌는데 걸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갔더니 무릎 인대가 상한 거라며 4주 후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방에 들어앉아 4주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4주째 되는 날 밖에 나가 걸어 다녔다. 상태가 악화됐다. 그때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았다. 그러나 세 달이 다 되도록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즈음 엄마는 곽선생 아줌마에게 어깨를 치료받고 있었다. 엄마는 오랫동안 어깨 통증에 시달리다 병원에 갔는데, 팔 근육이 찢어졌다면서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 일 년 동안이나 팔을 쓰지 못한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곽선생 아줌마를 찾아갔고, 아줌마에게 치료를 받은 지 얼마 안 돼 다시 팔을 쓸 수 있을 만큼 통증이 완화됐다. 엄마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고 나자, 나를 거기 데려가지 못해 안달을 했다.  

   거길 다니게 된 건 치료가 길어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치료기관을 옮길 때마다 몇 번만 가면 낫겠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터무니없는 낙관이 아니었다면, 차를 네 번씩 갈아타고 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갈 엄두를 어찌 낼 수 있었겠는가. 신호등 깜박거리는 횡단보도를 뛰어 건널 수 없고, 출발하는 차를 뛰어 탈 수 없으며, 문 닫힘 버튼이 먹통이라 문 닫히길 기다리다 숨넘어가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의존해야하는 다리로 말이다.

   아줌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한테 간혹 곽선생 아줌마 얘길 들었지만, 그 호칭과 얼굴을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줌마를 보자마자 어제 본 듯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깐깐한 눈매와 군살 없는 몸매, 짧은 파마머리에 옆 가르마를 타 핀을 꽂은 헤어스타일까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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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은 손님이 많았다. 기다리는데 뜸을 뜨는 사람들이 고통으로 손발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참았다. 나는 그걸 지켜보며 매 맞을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겁을 집어먹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고 침대에 누우니 아줌마가 경고했다. “이 침은 좀 아파.” 침이 피부 표층을 지나 지방층 깊숙이 꾸욱 박혔다. 압정 박힌 코르크판의 느낌을 알 것 같았다. 20여분이 지나 침을 뽑고 나자 이번엔 바늘로 사정없이 찔러 피를 뽑았다. 아줌마가 부항기에 고인 피를 보여주었다. 튜브물감을 쭉 짜놓은 것 같은 핏덩이, 어혈이었다. 피는 원초적 스펙터클이다. 사람들이 큰 구경거리라도 난 듯 들여다보며 큰 소리로 “많이 아팠나보네, 아유 가엾어라 쯧쯧” 했다. 어혈은 연골이 빠져나오며 모세혈관을 막는 바람에 피가 고여 뭉친 것인데, 그걸 싹 뽑아내고 나서 뜸을 뜨면 연골이 제자리로 들어가 착 달라붙는다고 했다. 어혈을 뽑는 데 사흘이 걸렸다. 그 동안은 뜸을 뜨지 않는다니, 다행이었다. 

   피를 뽑은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데 다리가 너무 가벼웠다. 다리가 안 아팠을 때조차 그렇게 가벼운 느낌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정말 기적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희망에 차서 열일을 젖히고 하루도 빠짐없이 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뜸뜨는 고통을 기꺼이 참았다. 그러나 그건 사혈의 일시적인 효과였다. 다리는 다시 추를 매단 듯 무거워졌고,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으며, 희망은 실망과 의혹으로 바뀌었다. 

   “간판을 안 걸고 이런 걸 하니까 별별 사람들이 다 있어. 어디가 아파서 왔으면 어디가 아픈지를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근데 어떤 여자가 처음 와서는 자기가 어디 아픈지도 말을 안 하고 팔을 내밀면서 <보세요> 이래. 내가 성질 같아서는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지만, 꾹 참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진맥을 봐서 침을 놔주니까, <어머 제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래. 그래서 내가 어디가 아파서 왔으면 최소한 어디가 아파서 왔다는 말은 해야지 병원에 가서도 그럴 거냐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랬어. 지금은 단골이야.” 아줌마가 손님들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하는 일화다. 침을 맞고 침 몸살이 나자 남편이며 시동생까지 친척 넷을 대동하고 따지러 왔다가 단골이 된 손님 이야기도 주요 레퍼토리다. 

   아줌마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무허가 진료를 하면서 겪어온 힘겨움의 토로이기도 할 테지만, 그보다는 손님들이 무허가 진료에 대해 품고 있을 말 못할 의혹을 아줌마가 먼저 말로 꺼내 해명하고 안심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아줌마는 손님들이 어떤 지점에서 문제를 느낄지 잘 알았고 그것들에 대해 미리미리 설명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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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은 치료를 받고 나오며 뜸 뜬 자리가 쓸려서 약국에 들러 밴드를 샀다. 그런데 약사가 피 뽑고 뜸 뜬 자리를 보더니 기겁을 하며 “아우 무릎에서 그렇게 피 뽑으면 안 되는데. 나이 들어 피 뽑으면 피가 새로 생기지도 않아요. 큰일 나요.” 했다. 약사가 하는 말이라 그 말에 권위가 실리면서 덜컥 겁이 났다. 물론 아줌마는 그런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설명을 가지고 있었다. 아줌마의 설명에 따르면, 한의원에서는 바늘을 얕게 찔러 피를 뽑다 말면서 피를 많이 뽑으면 빈혈이 온다고 하는데, 어혈은 죽은피라 많이 뽑아도 빈혈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아줌마의 설명을 아주 믿지는 않았다. 반대 주장을 하는 약사와 한의사의 자격증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줌마의 설명이 효과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그 설명은 확신에 찬 불신을 긴가민가로 바꾸어놓았고, 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아줌마의 설명이 필요한 문제가 또 있다. 아줌마는 침을 한번 쓰고 버리지 않는다. 그건 손님별로 따로 쓰니까 그렇다 치고, 문제는 부항기이다. 부항기는 여러 사람이 같이 쓰고 또 직접 피가 닿는 기구인데, 사용 후에 그냥 소독 솜으로 닦아두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정도 처리로 충분한 걸까? 그러나 아줌마는 거기에 대해서만큼은 아무 언급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병원에 대해서라면 제도적으로 위생 규정이 마련돼 있고, 담당기관에서 그것을 관리 감독할 것이다. 그러나 아줌마의 진료는 제도 밖의 일이니 관리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불안이 엄습했다. 

   제도 밖에서 생각이 많은 채로 치료를 받다보니, 제도란 이런 저런 생각을 덜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편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제도라고 하면 무형의 규칙 같은 걸 떠올리게 된다. 의료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치료를 받으러 제도 안팎을 오가다보니, 제도란 건물, 의상, 호칭, 표정, 말투, 세세한 대화 내용 같은 구체적인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의료제도란 직사각형의 건물, 복도들, 약품 냄새, 의사선생님, 유니폼, 규격화된 표정과 말투 이외의 다른 무엇이 아닌 것이다. 제도 밖으로 나가니, 그와는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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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줌마네를 무어라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침술원이라고 하자니 가정집이기도 한 그곳은 영등포의 한 시장 골목에 있다. 줄줄이 반찬가게 옆 파란 철대문집인데, 대문과 같은 색의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이 아줌마네다. 현관에 검정색과 보라색 쓰레빠 두 개만 나란히 놓여있으면 손님이 아무도 없는 거다. 그럴 때면 아줌마는 부엌에서 한약을 대리거나, 매실을 담거나,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나는 다른 일에 열중한 아줌마한테 인사를 하기가 미안한데, 아줌마는 매번 “어서 와” 하고 활짝 웃으며 맞아준다. 

   침대에 누우면 베란다로 난 창문으로 아줌마가 가꾸는 식물들의 잎사귀가 살랑거린다. 다른 손님이 있는 날은 침 맞는 동안 손님들 어깨 위에서 뜸이 타들어가는 걸 보기도 하고, 부항기에 피가 고여 가는 속도를 재면서 구석구석 손님들 몸매도 평가한다. 다른 손님이 없으면 침 맞는 동안 아줌마랑 얘기를 한다. 주로는 아줌마 얘길 듣는다. 이야기는 영등포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큰 딸이 간난아이일 때였다. 낮잠을 자다가 벼락 치듯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깨 보니, 그 소리에 놀란 아이가 눈이 뒤집힌 채 경기를 했다. 나가보니 공사하는 인부들이 양철지붕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거였는데, 인부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 후로 아이는 몸을 가누지도 음식을 삼키지도 못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침을 배우기 시작했다. 침은 아버지에게 배웠다. 아버지는 평생 해오던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준 뒤로는 혼자 공부를 해 침을 놓으셨다. 아줌마는 아버지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침을 배웠고, 아버지가 풍으로 눕게 되면서 아버지를 찾아오던 손님들이 아줌마를 찾아오게 됐다. 이론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침구학원에도 다녔다. 그런데 나라에서 학원은 허가를 해 만들어놓고, 졸업생에게 자격증을 안 줬다. 한때는 침구자격증 제도가 국회에서 거의 통과되는 분위기였는데, 한의사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그 후로는 논의마저 끊겼다. 올해 큰 딸이 47살이니 침을 한지 47년 됐다. 요즘은 점점 일하기가 싫어져서 딱 80까지만 하고 그만 두려고 한다. 이제 1년 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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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게도 침을 뽑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뜸 순서다. 침, 사혈바늘, 뜸에는 제각각의 유니크한 고통이 있지만, 고통의 강도로 치면 뜸이 으뜸이다. 나는 그 고통들이 차례로 지나가길 기다리며 고문 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린다. 교회 다니는 손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을 떠올린다고 한다. 뭐든 끝은 있는 법, 차가운 소독 솜이 뜸 뜬 자리를 지나가면 오늘 치료는 끝이다. 그런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오며 또 한쪽 다리를 끌었나보다. 아줌마가 “또 다리를 끄네. 아파?” “아니요. 이제 거의 나았어요.” “근데 왜 그렇게 걸어?” “습관이 돼서.” 아줌마는 자신이 직접 걷는 시범을 보이며, 나에게 다시 걸어보라고 하신다. 나는 아줌마 앞에서 마루를 한 바퀴 걸어 보이고서야 신발을 신는다. 

   치료를 받으러 들어갈 때와 비교해 나올 때는 다리가 한결 가볍다. 차차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역까지 걸어 다니게 됐다. 그렇게 좀 다닐만해지니 꾀가 나 한동안 치료를 받으러 안 갔다. 아줌마가 엄마에게 내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인사 전화라도 드려야하는데 치료를 계속 할지말지 마음이 갈팡질팡하여 아직 연락을 못 드리고 있다.

 

   야매 운운한 친구에게 이 글을 보여주었다. 친구의 달라진 반응을 기대했으나, “진짜 야매네. 침도 아버지한테 배우고, 가게도 없이 집에서. 거기 계속 갈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친구는 그 모든 것을 낙후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친구가 아줌마와 비교했던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전미선의 무면허 진료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기로 했다. 영화를 보며 나 역시 그녀의 무면허 진료를 시골 형사들의 주먹구구식 수사방식과 한 세트의 낙후함으로 받아들였다. 제대로 된 의료기관 하나 없고 과학수사라고는 풍문으로나 들어야하는 시골구석에서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할 도리는 없다. 영화를 보다보면 송강호 만큼이나 미치도록 범인이 잡고 싶어지면서, 시골형사들의 주먹구구식 수사방식에 절망해서는, 그들의 수사방식을 반드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흥분이 가라앉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송강호는 연쇄살인 같은 특수한 사건을 맡아 곤경에 빠진 것일 뿐, 시골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처리하는 데는 그가 다년간 갈고닦은 주먹구구로 족했을 것이다. 모든 수사에 유전자 감식이니 프로파일러 같은 수사방식이 필요한 건 아니고, 최첨단 수사라고 해도 모든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사람 패는 버릇은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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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미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큰 병을 고치기는 힘들고 그런 환자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병원이 생긴다고 해서 그녀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은 왕진가방은 그녀가 베풀 수 있는 진료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장점이기도 하다. 그녀는 왕진가방을 들고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닌다. 그것은 교통편이 적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은 시골에 딱 알맞은 진료방식이다. 그녀의 왕진가방이 보여주는 건 낙후성이 아니라 기동성이다. 그녀는 데이트할 때도 왕진가방을 챙기는데, 정사 후 여관방에서 그리고 햇볕 따스한 강가에서 가방을 열어 부상당하고 피로에 지친 애인을 치료하고 링겔을 놔주기 위해서다. 그토록 정답고 도움이 되는 데이트라니. 이제야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알겠다. 왕진가방을 든 애인이다.     

 

 

 

 

[이 게시물은 MVQ님에 의해 2016-03-02 10:52:02 댄스댄스댄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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