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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벼리 작성일15-09-17 00:15 조회1,8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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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메리크리스마스

 

김지현

 

 

일 년에 두 번, 구정설 추석에 목동 사촌오빠 집에 간다. 아침 10시. 차례 상을 차려놓고 돌아가면서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제문을 불태우고 상을 치운다. 이어서 차례 상에 올렸던 음식으로 아침을 먹는다. 소고깃국에 식은 생선구이, 식은 전류. 늘 같은 메뉴다. 아침상을 치우고 새언니들이 떡과 과일을 내온다. 손이 적은 집안이라 윗세대가 돌아가시며 인원이 점점 줄어드는 데다 다들 말수가 적어 무료하다. 사촌오빠가 TV를 튼다. 잠시 후 작은 아버지가 외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모든 순서가 끝난 것이다.

   엄마는 자기까지 죽고 나면 친척들과 이마저도 만날 일이 없고 그러다 아주 남 되지 않겠냐며 걱정이 많다. 엄마는 자기 친척도 아니고 죽은 남편의 친척과의 관계가 왜 그토록 중요한 걸까? 내가 명절에 큰 집에 가는 건 엄마의 강권에 의해서다. 차례, 겉도는 말들, 음식, 한복 입은 연예인이 나오는 TV 프로그램, 이 모든 것들이 지독히 익숙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것들과의 정서적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늘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기분이다. 나에게 명절은 예의상 참석해야 하는 남의 잔치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에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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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상 참석해야 하는 남의 잔치' 같은 명절

 

   여러 해 전부터 나는 대전사는 은주부부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다. 지난 12월 24일에도 부부의 퇴근시간에 맞춰 대전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시내 식당에서 아구찜을 배불리 먹고, 극장에서 <호빗3>을 보았다. 영화를 보며 한참이나 졸았지만, 3년 전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호빗> 시리즈 관람을 같이 마무리했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 케이크에 초를 꽂고 기념촬영을 했다. 초가 몽땅해져서야 케이크를 잘랐다. 우리 동네 유명 빵집에서 사간 케이크였는데, 완전 맛있어서 멀리서부터 사들고 간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셨다. 창학은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색깔을 맞춰 포도주스를 마셨다.

   어릴 적 나는 이브 날 함께 올나이트 할 친구가 없는 걸 최고의 수치요 낙오로 여겼었다. “나 오늘 친구네서 자고 온다.” 집을 나서며 안방 문을 여니 엄마가 TV를 보며 졸고 있었다. 이브 날 만날 친구 하나 없이, 게다가 그런 자기 처지의 비참함조차 모른 채 말이다. 완벽한 낙오자의 모습이었다. 그날 친구네서 광란의 밤을 보냈겠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기억나는 건 명멸하는 TV 불빛 아래서 졸다 깨다 하던 엄마의 모습뿐.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내 모습이 되었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데 시들해졌고 사람 북적거리는 날 약속 잡는 걸 꺼리게 되었다. 은주부부와 크리스마스에 만나게 된 것도 그날이 휴일이고 또 연말이기 때문이지, 크리스마스에 의미를 두어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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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데 시들해지다

 

   그런데 대전의 아파트에서 나는 다시 크리스마스가 참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쁘게 꾸민 장식과 감미로운 캐럴이 좋고, 한 해가 저무는 센티한 흥청거림이 좋고, 친구들과 같이 먹는 케이크의 달콤함이 좋았다. 이 모임이 해마다 반복되는 게 좋았고, 그 날이 화려한 크리스마스여서 더 좋았다. 이런 게 명절이구나! 나는 처음으로 명절을 마음 흡족하게 누리고 있었다. 가까워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입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서, 밤늦도록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말이다. 

   여행 중에 베트남에서 설을 맞은 적이 있다. 곳곳에 세수용품 파는 시장이 열렸는데, 붉은 세수장식들이 꽃처럼 화려했다. 진짜 꽃나무도 팔았다. 만개한 복사꽃나무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귤나무였다. 베트남에선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인데, 도로의 모든 오토바이들이 귤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싣고 들고 달렸다. 도로 위로 복사꽃과 노란 귤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날 저녁 모든 집들이 낮에 본 장식들로 단장했다. 현관 앞에 산처럼 높은 차례 상이 차려졌고 그 옆엔 귤나무와 복사나무가 세워졌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말이다. 우리 명절의 점잖음은 상업을 천시하던 유교의 유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도로 발달된 상품의 시대가 아닌가. 축제가 그만큼도 화려하지 않대서야 서운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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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나무, 복숭아 나무를 싣고 달리는 베트남의 오토바이들

 

   농사짓던 시절, 사람들은 농사가 시작되는 봄과 끝나는 가을에 축제를 벌였고 그게 구정설과 추석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내 생활리듬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달력에 맞춰져있고, 내 한 해는 양력 1월 1일에 시작해 12월 31일에 마감된다. 나에게 구정설이 있는 2월은 이미 한 해 일정이 시작된 뒤고, 추석이 있는 10월은 아직 일정이 끝나기 전이다. 명절과 내 생활이 엇박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명절연휴가 매번 부적절한 타이밍에 불쑥 끼어들어 내 생활의 호흡을 끊어놓는다고 느낀다. 

   “이번에도 대전에 내려 올 거죠?” 은주부부와 만날 약속을 한 건 지난 가을이었다. 그때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하던 일이 모두 끝나고 방학이 시작될 것이었다. 나는 방학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긴 노동이 끝나고 휴가가 시작되는 그때만큼 열렬하게 놀고 싶고 부담 없이 놀 수 있는 시기는 없다. 12월 22일 마침내 일이 끝났고 24일 대전에 도착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놀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고,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먹고 놀았다. 원 없이 놀았다. 귀경길에 생각했다. ‘옛 사람들에게 추석이란 이런 것이었겠구나.’ 내년엔 캐럴 음반을 챙겨갈 것이다. 올해 캐럴이 없어 아쉬웠다. 이처럼 해를 거듭하는 수정보완을 거쳐 크리스마스는 나의 전통이 되어갈 것이다.


 

 

 

[이 게시물은 MVQ님에 의해 2016-03-02 10:52:02 댄스댄스댄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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