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친구에 대하여 > 쿵푸스온더로드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8/11/18 일요일
음력 2018/10/11

절기

쿵푸스온더로드

네덜란드 원정대 | 스피노자, 친구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은거인 작성일15-09-11 22:27 조회2,151회 댓글0건

본문

네덜란드 쿵푸로드 원정대의 탐사 이야기. 《스피노자를 걷고, 네덜란드를 읽다》

 

 

 

세 번째 이야기. 우정

 
영대

 
■  하우스키퍼와의 만남
   원정대가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 앞에 예상대로 '스피노자란spinozalaan(스피노자路)'  표지판이 보였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된다는 거지? OK! 가보자구!” 10여분을 걸어가자 벽돌집 하나가 나타났다. 내걸린 깃발에는 ‘조심하라’라는 스피노자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고, 대문에는 <spinoza house>라고 적혀있었다. 드디어 발견. 스피노자가 2년 동안 살았던 집, 지금은 그의 유고품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 도착한 것이다.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스피노자가 살았던 집.

하숙집이었고, 스피노자는 2층의 방 하나를 사용했었다.

 

    똑똑. ……. 똑똑. 문을 두드리고 한참이 지나자 한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 우리가 스피노자 하우스를 찾아왔다고 하자, 그는 약간 놀라면서도 아주 반가워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여기 스피노자 하우스의 하우스키퍼입니다.”

    스피노자 하우스 안에는 스피노자의 여러 유품들이 있었다. 스피노자가 읽던 책, 렌즈를 깎았던 기계, 직접 쓴 <에티카> 등등. 하우스키퍼는 이 물건들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히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그가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끝도 없이 계속 말했기 때문이다. (계속된 영어듣기에 지쳐있었다.) 조금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우리를 무척이나 환영하고 있고,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 한다는 것을. 그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스피노자 하우스의 하우스키퍼

그의 설명을 듣느라,

영어듣기 지대로 했다!


   게다가 그는 아주 유쾌하기도 했다.

 

“저희는 지난 1년 동안 스피노자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집을 찾아왔죠.”

“오, 그래요? 대단하네요! 그럼 <에티카>도 읽어보았겠네요.”

“네, 매우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읽어봤는데, 잘 모르겠더군요.”

    스피노자 하우스키퍼의 솔직한 고백, 거기에 우리 모두는 빵! 터졌다. 동병상련. 그는 스피노자를 위대한 성인처럼 떠받들지 않았다. 스피노자에 대해 많이 안다고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딱 친구처럼, 자기의 아주 가까운 친구를 소개시켜주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 덕에 우리도 스피노자의 집에 놀러온 친구가 된 듯 했다.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 스피노자는 고독하지 않다
   스피노자도 이 집에서 그렇게 친구를 맞았으리라. 친구들이 들렀을 때, 반갑게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특히 서로의 생활과 책, 배움에 대해서. 스피노자의 집에 들어오니, 자연스레 여기서 살던 모습들이 그려졌다.

   스피노자 나이 25세, 그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 당한다. 끔찍한 저주의 말과 함께. “지금부터 아무도 그와 얘기해서는 안 되고 서신왕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한다.” 그래서 스피노자가 평생 고독하게 살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유대인 공동체를 떠나 더 많은 친구들과 우정을 맺어나갔다.

    파문 이후, 스피노자는 레이덴 인근의 작은 도시로 옮겨왔다. 우리가 찾아간 곳이 바로 여기에 있는 집이다. 여기서도 친구들과의 우정은 계속 되었다. 스피노자가 원고를 보내면, 다른 친구들이 글을 함께 읽으며 토론했다. 내용에 대해 편지가 오가고, 몇 번씩 여기로 찾아오기도 했다. 스피노자 공부모임의 뜨거운 우정!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스피노자가 사용하던 렌즈 깎는 틀

스피노자 집에는 이런 분위기에서

실제로 스피노자가 어떻게 살았을지가 그려진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다. 스피노자는 여기서 한 학생에게 데카르트 철학 과외를 했었다. 수업를 위해 그 학생이 몇 달간 함께 살았다. 그러자 친구들의 질투와 불평이 터져나왔다. 스피노자와 하루종일 같이 공부하는 그 학생이 너무 부럽다는 둥, 학생에게 가르친 내용을 제발 출판해달라는 둥. 헉! 이정도면 우정도 보통 우정이 아니다. 공부 때문에 질투할 정도라니. 음식 때문에 질투하는 연구실과 사뭇 다르다. ^^

    비록 스피노자의 철학이 저주와 파문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결코 고독하지 않았다. 언제나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그의 철학은 우정 속에서 일어났고, 우정은 그의 철학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레이덴의 골목길.

이 길은 최소한 세 번은 지나갔던 것 같다.

물론 의도치 않게~

 
■  기쁨
   스피노자 집에서 만난 하우스키퍼. 스피노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집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스피노자 집을 나오면서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메일주소를 주고받았다.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그와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하우스키퍼는 우리에게 근처의 맛있는 레스토랑, 라보타를 소개해주었다. 워낙 유명해서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알거라고 했다. 하지만 웬걸! 도대체 거길 아는 사람이 없었다. 헤매고 헤매 겨우 찾아갔다. 그러나 생맥주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우리는 감동했다. 그는 역시 최고의 하우스키퍼였다! (길을 헤맬 때 약간 의심이 들었지만)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dcd93c70486a3802d4869c1626831ebd_1441977
힘들게 찾은 라보타

그러나 아주 큰 기쁨을 맛보았다.


    스피노자는 우정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소중하게 여겼다. 기쁨은 우리의 활동능력이 증가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즉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행동하고 더 풍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의 변화가 바로 기쁨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자신의 사유와 삶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면 다 즐겁긴 하다. 중요한 건, 어떤 우정이고 어떤 기쁨인가다. 스피노자에겐 배움의 우정이다. 스피노자와 친구들은 함께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우정을 맺었다. 그리고 거기서 얻는 기쁨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쾌락이나 유희와는 다른 기쁨을. 오직 이런 기쁨은 진실된 우정만이 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레이덴을 찾았다. 레이덴이 더 궁금했고, 라보타의 맥주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레이덴에서의 기쁨이 다시 우리를 레이덴으로 끌어당겼다. 스피노자의 집과 레이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곳을 생각하면 자꾸 웃음이 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