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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원정대 | 쿵푸로드, 새로운 길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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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은거인 작성일15-09-12 18:06 조회2,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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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쿵푸로드 원정대의 탐사이야기. <스피노자를 걷고, 네덜란드를 읽다>

 

다섯번째 이야기.

쿵푸로드, 길을 만들며가다

 
영대

 


 ■ 감탄에서 한탄으로
   2월 2일, 나는 프라하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른 네덜란드 원정대원들 보다 일주일 먼저 출발했다. 선발대? 그런 건 아니다. 단지 네덜란드 외에 다른 나라들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유럽까지 가는데 네덜란드만 보면 좀 아쉽지 않은가. 그래서 암스테르담이 아닌 프라하로 갔던 것이다.

    프라하, 빈, 부다페스트를 둘러보았다. 이 도시들은 별5개짜리 관광지가 왜 그리 많은지, 예상했던 날짜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빨리 다음 도시로 가야하는데……. 그래서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코스를 따라 갔다. 코스 곳곳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박물관을 만났으며,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네덜란드에서 원정대와 만났다. 그 뒤로 스피노자의 궤적을 따라다녔다. 그런데 웬걸! 앞서 관광지 코스를 돌아볼 때랑 전혀 달랐다. 감탄은커녕 한탄만 나왔다. 여행, 이리도 힘든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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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운하를 따라 걸으며...

그러나 이미 몇 시간째 걸었던 터라 운하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덜란드에 널린 게 운하라서...

 

 ■ 네덜란드를 헤매다 
   사실 처음 여행계획을 짜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네덜란드 여행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스피노자에 관한 건 거의 없었다. 철현과 나는 온갖 영어사이트를 뒤져가며 남아있는 스피노자 흔적들을 긁어모았다. 예전에 읽었던 스피노자 평전도 다시 꺼냈다. 그땐 무심코 넘겼던 지명들을 지도와 대조해보았다. 마을이름, 거리이름을 비교해가면서 루트를 얼추 완성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니, 우려한 그대로였다. 우리는 길을 너무 많이 헤맸다. 유명한 관광지였다면 근처에만 가도 커다란 표지판들이 우리를 안내했으리라. 허나 그렇지 않았다. 표지판은커녕,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기 일쑤였다. 대략 난감! 그러나 여행자가 별수 있나? 일단 무조건 걸어가 볼 수밖에.

    하루는 반나절을 완전 공쳤다. 네덜란드엔 스피노자가 살았던 집들 가운데 두 군데만 보존되어있다. 딴에 남아있지 않은 스피노자 집터를 보겠다며 출발했다. 평전에서 본 거리이름을 찾아갔다.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 길로 갔다. 1시간 쯤 지나자, 우리는 처음 자리에 와 있었다. ‘그래, 사실은 산책하려고 했던거야’ 라고 ‘정신승리법’을 써먹고, 황급히 그 도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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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까지 스피노자의 집을 찾아 왔건만...

내부 리모델링 때문에 문이 닫혀있었다.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는데... 흑흑
 

    헤매다 보면 간혹 의외의 소득이 생기기도 한다. 레이덴 대학교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지도에 머리를 파묻고 가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웬걸. 데카르트가 살았던 집 앞에 와있었다. 실은 그 전날부터 스피노자와 데카르트의 관계에 대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이 둘이 완전히 대립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겹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데카르트는 네덜란드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이 동지이자 라이벌 관계를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데카르트 집에 도착한 것이다. 오호, 이 놀라운 마주침이란! 장담컨대 우리가 작정하고 데카르트 집을 찾으려했다면, 못 찾았을 것이다.

    결국 여행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냈다. 하지만 도리어 길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 뜻밖의 장소에 이르고,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다가 힘들어서 투덜대기도 하고. ‘고생 끝에 꼭 낙이 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소중한 교훈을 얻기도 했다. 이 미로의 기억이 없었다면, 우리의 여행은 꽤나 단조로웠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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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닌가벼?

여행기간 동안 자주 머리를 지도에 콕! 처박고 다녔다.

 

 ■ 투어도 아닌, 성지순례도 아닌
   여행을 하면 누구나 길을 헤맨다. 나도 다른 나라를 둘러볼 때 몇 번씩 길을 잃어버렸다. 그러니 문제는 길을 헤매고 안 헤매고의 차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헤매는 것을 대하는 태도다. 투어여행에선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비싼 유럽여행, 최소한의 돈과 시간으로 최대한의 관광지를 둘러보기. 자연스레 이런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관광지들을 점프하며 다니게 되었다.

    근데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한국에서 하던 방식이었다. 목적만 중요하고 번거로운 과정은 생략하고 싶은 마음. 이건 정확히 자본의 길이기도 하다. 자본은 다양한 공간이 갖는 질적 차이들은 사상시키고 오직 비용으로만 가치를 매긴다. 그러니 관광지로 가는 최단코스를 짜고, ‘인증샷’으로 관광지를 소비하는 것 외엔 다른 감응이 없다. 기념품 가게나 면세점에서 헛헛한 마음을 달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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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여기가 어디지?

 
    투어여행이 의미가 없어 허무하다면, 반대편엔 성지순례가 있다. 여기선 성지와 성지로 가는 과정 모두 의미들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헛헛하지 않다. 느낌으로 충만하다. 근데 누구나 완벽하게 동일한 느낌을 갖는 게 함정이다. 아주 정교한 의미의 구성, 철저하게 못 박힌 과거의 시공간. 즉, 거긴 이미 ‘성지’다. 그것이 달라질 순 없다. 따라서 현재의 시공간과 소통하기 힘들고,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이 들기 어렵다.

    우리가 스피노자와 함께 한 이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여행도 어느 땐 자본의 흐름과 교차되었을 것이다. 또 여러 곳에서 스피노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투어여행이나 성지순례와 다른, 쿵푸로드라고 불러야하는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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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다양한 스피노자 동상

표정이나 생김새, 자세까지 각양각색이다.

왼쪽이 너무 진지하고 무겁다면,

오른쪽은 상당히 가볍고 경쾌하다. 그러나 못생겼다 ㅠㅜ

 

 ■ 쿵푸로드, 새로운 길을 만들다
   이상한 것은 그토록 길을 많이 헤맸건만, 그 시간이 아깝다거나 불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고나면 부어오른 다리 빼고는 괜찮았다. 아니, 훨씬 좋았다. 왜냐하면 우리 나름의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것, 공간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의미화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 여행을 쿵푸로드로 만들어주는 포인트다.

    투어여행과 성지순례는 이 포인트가 없다. 자신만의 길과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다. 이미 주어진 길을 따라간다. 자본의 흐름 속에서 허무하든가, 과도한 의미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든가. 자본이나 종교적 가르침이라는 기준이 다를 뿐, 작동방식은 동일하다. 스스로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여행. 그러므로 길을 헤맬 때, 주어진 길을 벗어나는 것 같아 불쾌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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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매니저의 네덜란드

철현의 카메라 속에는 유난히 야채와 과일 사진이 많다.

철현에겐 과일, 야채도 하나의 길이었던 것.

 
    우리의 여행엔 애초에 정해진 길이 없었다. 우리 스스로 길을 만들고, 네덜란드를 우리 방식대로 의미화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니 길을 헤매는 것도 새로운 지도를 만들기 위한 실험으로 느껴졌다. 낯선 시공간과 관계를 맺기 위한 즐거운 실험!

    만약 길을 만들어가는 실험이 없었다면, 우리가 스피노자에게서, 네덜란드에게서 어떤 감응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 다양하고 과격한(!) 실험이 있었기에, 도착한 장소들이 특별해졌다. 데카르트 집을 발견해 기쁘기도 했고, 때론 실패하기도 했다. 그치만 실패도 실험의 일부였다. 여튼 우리는 실험 덕에 각자의 방식으로 스피노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글쓰기다. 각자의 실험보고서로서.

    길을 만들어간다는 것, 이번 여행에서 이것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다른 나라들을 투어했던 것보다도 훨씬. 이 매력에 이끌려 다음에도 또 쿵푸로드를 가고 싶다. 물론 다리에 붙일 파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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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랬어요!"

주인아줌마가 학교에 아이를 등교시키는 동안

얌전히 자전거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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