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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와 석영이 | 사랑하는 만큼 비통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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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작성일18-10-27 10:43 조회112회 댓글1건

본문

 

사랑하는 만큼 비통한 세상!

 

 

김석영

 

 

 

 

철부지 보옥

 사람들은 공부는 안 하고 누나, 누이들과 놀기 바쁜 보옥을 보고 ‘호색한’, ‘철부지’라며 혀를 끌끌 찬다. 보옥은 누나, 누이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 너무 즐거워 그런 말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그러나 보옥도 일 년 열두 달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홍루몽은 소설 전체를 통틀어 ‘무상함’에 대해 말한다. 보옥이에게도 문득문득 ‘모든 것은 끝이 난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꽃잎 같고 달님 같은 대옥의 얼굴과 용모가 장차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그 어찌 가슴이 찢어지고 애가 끊어질 듯 괴롭지 않겠는가. 대옥의 몸을 찾을 길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은 또 어떠하랴. 보차도 향릉도 습인도 다들 사라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보차 등을 찾을 길이 없어지는 때면 나 자신은 또한 어디쯤에 가 있겠는가. 나 자신도 어디로 가서 헤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그리하면 바로 이곳, 이 정원, 이 꽃들과 버드나무는 또 누구의 것이 되어 있을지!
 그렇게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점점 생각을 넓혀가다 보니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것이 되겠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며 그저 점점 아득해지기만 하였다. 차라리 이 우주를 벗어나고 인간세상을 떠나 이러한 비통한 세상으로부터 참으로 순수하게 해방되고만 싶었다.

─조설근, 『홍루몽』 2권, 나남, 2014, p.182

 누이들과 누나들, 그들과 함께 지내는 지금이 너무나 좋은 보옥. 그래서 그는 장차 그들이 변해버리거나 사라져 버릴까봐, 혹은 자기 자신 역시 지금을 잊고 변해버릴까 아득하니 슬프다. 이런 보옥을 보고 있자니 가엾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다. ‘뭐가 사라진들 어떻게든 잘 살 수 있다는’걸 모르는 어린 보옥이가.

 

지금이 좋아서 슬프다?!

 나는 홍루몽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보옥이가 이렇게 (겉보기엔)별 이유 없이 슬픔에 잠긴다는 사실 하나로 그를 철부지 보듯 했다.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도 깊은 슬픔에 잠기는 건 정말 어릴 때나 하는 일 같아서. 허나, 보옥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정말 어리고 어리석어서 일까?
 친구들이 사라질 걸 생각하니 우주를 벗어나고 싶을 만큼 아득하고 슬프다는 건, 지금 친구들과 함께하는 삶이 그만큼 기쁘다는 것을 반증한다. ‘비통한 세상에서 순수하게 해방되고 싶다’는 것은 지금은 이 비통한 세상에 완전하게 몸 담구고 있다는, 온전히 집중하여 살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지금의 삶을 너무 사랑하니, 변화가 비통한 것. 지금 삶이 너무 좋은 가운데, 언젠간 이것도 끝이 난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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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함’으로 가장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이런 비통함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보옥이에 비해 ‘뭘 좀 알아서’ 초연한 걸까? 오히려 사라지는 걸 상상하면 슬플 만큼 소중한 무언가가 나에겐 없는 게 아닐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서 소중한 게 사라진다는 상상을 제대로 해볼 수 없는 상태. 어딘가 찝찝하다.
 이제껏 내가 ‘모든 것은 결국 끝이 난다’는 명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그 말끝에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정답’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걸 참 쉽게 말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식으로 사는 것과 초연함을 혼동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초연하다고 믿으며. 반면 보옥이는, 초연하려는 의지 따위 없다. ‘어짜피 끝이 날 테니 감정을 잘 조절해야지’라든가 ‘너무 바보같이 여기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런 말들은 ‘모든 것이 끝난다’는 걸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상처에 대한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상처 또한 일시적이라는 것을 정말 안다면, 지금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 말들로 어딘가에 깊이 마음을 두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 나올 수밖에.

영원을 지나 지금, 여기에 접속하기

 보옥은 오히려 무상함을 절절히 느끼기 때문에, 영원을 거쳐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듯하다.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히 마음을 쓴다. 영원은 없으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것. 그렇게 지금을 절절히 좋아하니, 또 무상함은 절절히 슬프다. 보옥의 슬픔은 거기서 온다. 어리석거나, 아직 어려서가 아니라, 그런 강도로 삶을 살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내가 모르는 비통함이다. 그러니 이 깊은 비통함이야말로 보옥이가 삶에 진-하게 접속하고 있다는, 지금의 삶을 절실히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댓글목록

이달팽님의 댓글

이달팽 작성일

이번에 니체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독했을 수도 있지만ㅋㅋ)
모든 게 끝이 있어서 허무한 게 아니라 시작이란 걸 했으니까 끝이 있는 거라고,
그래서 절절히 비통함을 느끼면 그만큼 내가 뭔가 절절히 했다는 거고, 오히려 허무하지 않을 것 같다-는
보옥이 이야기 읽으니 그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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