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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아케이드 산책기 | 우주는 똑같은 것이 끝없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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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동 작성일18-12-06 09:32 조회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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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똑같은 것이 끝없이 반복된다

추승연

 

새로운 옷, 새로운 스마트폰, 새로운 메뉴, 새로운 음악 등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매번 새로운 것들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자본주의와 함께 권태가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새로운 것들을 공급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어떤 욕망을 나타내는 것일까?

 

당시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빈부격차를 부추겼다. 자본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재산을 더 큰 자본으로 불렸고, 노동자들은 그 구조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자신의 노동력을 바치게 되었다. 이런 양극단의 구조 속에서 두 가지 양상의 권태가 등장했다.

 

첫 째는 자본가의 권태이다. 그들은 앞으로의 삶에 어떤 변화도 없기를 바란다. 자신들의 돈과 권력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심해서 주기적으로 살롱을 열어 사교모임을 갖지만, 살롱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든 얼굴에 어김없이 권태의 그림자가 나타나 있다. (p.334)”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권태로움을 한탄하는 것은 언제나 유행이 된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의 권태이다. 그들은 매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을 수행한다. 자신의 노동에 전문화되면 될수록, 그들은 기계의 부품처럼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한 작가는 직물 공장에는 권태의 지옥이 있다(p.341)”고 표현했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자본가와는 달리 변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더 나은 미래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본가들은 그들에게 박람회를 열어주고 새로운 상품들을 보여주며 그들의 권태를 마취시키려고 했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권태를 해결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반복되는 노동에 묶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은 노동의 권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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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노동에 전문화되면 될수록그들은 기계의 부품처럼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이처럼 권태는 1840년대에 유행병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p.338)” 19세기의 그런 흐름 속에서 블랑키, 니체 등의 사상가들은 더욱 나아가 영겁회귀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우주는 어떠한 변화도 없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인용한 다음 문장은 블랑키의 천체의 의한 영원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각각의 세계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러한 세계와 함께 사라진다.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지구라는 투기장에서는 똑같이 좁은 무대 위에서 똑같은 드라마가 똑같은 배경에서 펼쳐질 뿐이다. () 다른 천체 위에서도 똑같은 단조로움, 똑같은 무기력이 반복된다. 우주는 무한히 반복되며,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 347~348)”

세계는 유한한 재료로 구성되지만 시간은 영원하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은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언젠가 이루어졌던 것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자본가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세상은 결국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 이론은 세상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당시 자본가들의 욕망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론의 핵심을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가장 무거운 사상을 창조했다. - 그렇다면 이제 사상을 경쾌하게 받아들이고 최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창조해보지 않겠는가!(p.353~354)” , 이 이론은 현재에 영원의 권위를 부여하는 동시에, 지금 그 현재를 가장 기뻐하는 존재가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를 권태롭게 보내는 자본가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권태에 바치는 노동자, 양측 모두 어쨌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영원회귀를 기뻐하는 존재를 창조하라는 니체의 말과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의 나를 희생하는 욕망은 그 어떤 것도 가차 없이 무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 욕망은 결국 우리를 '영원한' 자기소외의 길로 안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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