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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쌤과 아이들의 중국여행기 | 중국어? 낯선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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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은거인 작성일15-09-15 14:38 조회2,9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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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쌤과 아이들의 중국 여행기 2편
 중국어 , 그 낯선 고통과 만남    


민경


    어제 연재되었던 키키 언니의 글에서 나왔다시피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우크라이나의 내전(!)으로 인해 애초 목적이었던 러시아 문학 여행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사는 것은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ㅋㅋㅋ). 그러다 갑자기 러시아 대륙 대신에 중원 대륙을 차선책으로 선택하게 되어 중국으로 향하게 됐다. 태어나서 중국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사실 별 걱정은 없었다. 중국어를 모르지만 그래도 러시아어 보다는 많이 알지 않는가! 그리고 ‘세상에는 영어라는 세계 공용어도 있고, 정 안되면 길쌤께서 필담(!)을 부탁드리면 될거야’라고 생각했다. 러시아도 별 탈 없이 갔다 왔는데, 중국쯤이야. 그런데 무난한 여행이 될 거라는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우리가 갔던 곳이 어딘가. 세계 지도의 중심에 자신들을 위치시키던, 몇 천 년을 세계 최고의 문화. 경제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중화의 나라였다! 우리 일행은 여행 내내 중국어 때문에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1. 중화의 나라, 중화의 언어

    태어나서 이렇게 의사소통에 고통을 느낀 적은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생생한 고통 전달을 위해 에피소드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 싶다.

    의사소통 장애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부터 시작됐다. 여행 전의 생각으로는 북경은 대도시이니 영어로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승덕(열하의 현재 이름)에서만 중국어 몇 마디 혹은 한자로 써서 보여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북경에서부터 시작됐다. 버스 터미널을 찾는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키키 언니의 글에도 등장했던 일화지만 당시의 생생한 고통을 전달해드리고 싶기에 한 번 더 쓰겠다. 우리의 여행은 현지 가이드 없이 철저히 우리의 힘만으로 다녀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발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북경에서 승덕으로 가는 고속 버스를 타기 위해 사혜(쓰훼이)역에 내렸고, 사혜터미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사람은 너무나 많았고 터미널 같이 생긴 것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역무원 아주머니께 ‘버스 터미널’이라고 말하며 위치를 물어봤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버스 터미널이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쓰지 않나 보다. 아주머니는 나를 마치 별에서 온 것 마냥 쳐다보고 계셨다. 결국 영어로의 의사소통을 포기하고 가방에서 승덕 지도를 꺼내 승덕이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어설픈 중국어를 시도했다. “워이야오취”(가고싶어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 ^^라고 설명을 해 주셨다. 나의 중국어는 갓난아기 (옹알이) 수준이었으나, 아주머니의 중국어는 농익은 중년의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앞에는 수십 년의 실력 차가 존재했다. 결국 아주머니의 손가락질과 간신히 찾은 안내판을 보고 터미널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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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인고...?

매니저로서 고생하는 민갑자

 

    위의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버스를 타고 밤늦게 도착한 승덕에서 우리는 야식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대도시 북경의 지하철역에서도 되지 않던 영어가, 중소도시의 작은 식당에서 될 리는 만무했다. 우리는 외국인 티를 온몸으로 내뿜으며 식당에 들어가, 한문으로 쓰인 메뉴판을 길쌤이 읽어주신 덕에 간신히 메뉴를 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어설픈 중국어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쯔어그어”(이거)라고 주문하는데도 불구하고, 직원분은 우리에게 중국어로 친절하게도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끊임없이 애쓰셨다. “##%^^@&*^^&&&**” 우리는 외국어 청취보존의 법칙을 초과한 우리의 귀의 안정과 그 분의 편안함을 위해 우리는 한국인이며 중국어를 모른다고 열심히 어필했다. 그러자 직원 분은 알겠다는 제스쳐를 취하셨고, 우리는 안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다시 속도를 느리게 해서 또박또박 한 음절씩 끊어서 말씀을 해 주시는 게 아닌가. 뭔진 몰라도 “이.건.소.고.기.로.만.든.음.식.이.고” 같은 느낌이었다. 내 속에서는 “모른다고!!!고만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거야말로 중국의 고유한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마 우리를 변방에서 온 소수민족 중 하나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를 “그래. 사투리가 심하구나. 베이징 근처는 처음이지?”라는 눈치로 바라보며 설명해주었던 것이다. 대륙에서 산 사람들은 모두 그런 걸까. 그러나 중국에서 겪은 이러한 일들을 작년에 갔던 러시아에서는 겪지 못했다. 러시아어는 “안녕하세요”도 모르고 떠났다. 하지만 외모가 너무 다른 탓인지 러시아인들이 특별히 설명해주거나 우리를 내국인이라고 착각하고 길이나 정보를 묻는 일들은 전혀 없었다. 그저 우리가 필요할 때만 영어로 의사소통하고(러시아도 영어로 소통이 잘 되진 않았다), 거의 우리 스스로 찾아다녔다. 결국 이런 일화들은 중국의 특성이다. 중국인들에게는 모든 언어를 중원 대륙의 언어 중 하나로, 모든 민족을 중원의 민족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 현재 중국이 중세 시대만큼 찬란한 업적을 자랑하고 있진 않지만, 세계의 중심이라는 그들의 자부심은 후손들의 DNA에까지 무의식으로 새겨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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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번 먹기 정말 힘들다 ㅠㅜ


2. 낯선 언어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낯선’ 것들에 휘몰아쳐야 했다. 그 중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언어였다. 사실 여행 전에는 오히려 같은 문화권이고, 가보지 않아도 너무나 익숙한 나라니까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가본 중국은 너무나 낯설어서 흥미로운 나라였다. 물론 여행 후반부에는 총무로서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관광지와 대중 교통의 표를 자주 구입한 탓에 “다섯 명이요”라는 뜻의 “우거런”이 입에 붙게 되었으며, 어디서든 계산을 많이 한 탓에 제법 큰 돈 단위도 능숙하게 알아듣게 되는 등 중국어의 발전도 미약하게나마 있긴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 ‘언어’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요즘 장애인 활동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는 나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어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지 않나 싶다. 활동보조 아르바이트의 이용자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지적 장애 친구이다. 단어 구사가 전혀 되지 않는 친구라, 사실상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 이것은 정말 낯선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중국에서도 똑같이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모국어 이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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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끼어든 중국인 아저씨

정말 불쑥불쑥! 끼어드는 낯섬이다


    어릴 때부터 항상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모든 사회적 문제와, 관계 문제는 소통의 부재 즉 대화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에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갖추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올해 대화가 불가한 상황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이때 새로운 언어, 낯선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20년을 한국어를 듣고 말하고 써온 사람으로서, 한국어는 이제 패턴으로 자리잡았다. 나는 익숙하게 말하고 쓰는 방식 이상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중국어라는 낯선 언어와 만났을 때, 장애인의 언어와 만났을 때 우리는 쓰던 방식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중국에서 내가 사용했던 언어는 중국어-영어-한국어-바디 랭귀지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통상적으로 보자면 나의 말은, 너무나 능숙하지 못해서 언어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면서 이번 여행에서만큼 간절히 말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능숙하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언어를 발명해서 사용해야만 했다. 언어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언어를 관계의 매개라는 조금은 식상한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면, 나는 아주 낯선 언어를 사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여행이 나에게는 낯선 것들과의 충돌과 만남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혹시 모를 오해들에 대비해서 변호하자면 이 글은 “그러니까 외국어를 배우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어 공부에 대한 새로운 필요성과 이유를 찾게 된 계기였다. 나는 이제껏 외국어 공부는 다른 나라의 말을 모국어처럼 잘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절대 외국어는 모국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어는 항상 낯설어야만 한다. 외국어는 기존의 나와 다르게 말하기 위해, 다르게 보기 위해, 다르게 듣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외국어를 통해서 낯선 세계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중국어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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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쌤, 유일한 한문능통자

그 덕에 가이드 역할을 하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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