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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라 기범 | (복수로드 여행기 1탄) 복수의 도시 소흥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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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범 작성일17-07-31 09:54 조회6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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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저는 동칠이와 열하, 소흥, 상해 여행을 하고 현진이와 단둘이 소주, 양주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그 중 소흥-소주-양주는 옛 오월 지역, 와신상담의 주인공들인 구천, 오자서, 부차가 활약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복수의 대명사들이죠. 복수를 위해 수많은 고난을 겪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어떻게 남겨져 있었을까요? 그럼 복수로드 1편 복수의 땅 소흥! 시작하겠습니다. 


복수의 땅, 소흥에 가다



물의 도시 소흥

북경에서 상해를 거쳐 소흥(紹興)으로 갈 때 중국 고속철로 갔다. 최고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속철이 무려 6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을 만큼 엄청난 거리였다. 처음 베이징에서 출발한 고속철의 바깥 풍경은 평야만 계속되었다. 척박하고, 광활한 평야가 펼쳐졌다. 산동평야였다. 몇 시간 뒤 다른 풍경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목이 우거져있고, 많은 호수가 보였다. 논처럼 보이는 곳에는 물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이게 바로 강남의 풍경이었다. 우리가 가는 소흥은 바로 이런 호수와 강이 많아 물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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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평야를 지나, 물의 도시 소흥에 도착했다

 

우리는 왜 소흥에 갔을까. 일단 우리 동칠이들이 공부했던 루쉰이 바로 이곳 소흥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외에 또 한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 바로 이곳은 월나라 옛 수도였기 때문이었다. 소흥의 옛 이름은 회계(會稽)이다. 


“회계는 복수와 설욕의 땅이다. 나는 월나라의 사람으로서 이 뜻을 잊지 않는다.”(1936년 2월 10일 보낸 편지.)” 『노신』, 마루오 쯔네키, 19쪽


회계는 춘추 전국시대 월나라의 수도였다. 오왕 합려가 월을 공격하다 월나라 구천의 역습을 받아 죽고 말자, 그의 아들 부차는 수년 동안 아버지의 복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이를 안 월왕 구천은 선제공격을 했지만 도리어 패배해 회계산에 포위되고 말았다. 월왕의 신하 범려와 문종의 노력으로 목숨만은 건졌던 구천! 그는 이후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갚기 위해 22년간이나 복수의 칼을 간다. 이후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오왕 부차는 자결하고 만다. 수십 년간 이어지는 복수의 서사시! 이 이야기에 이야기꾼과 민중들은 매료됐고, 이들의 이야기만 따로 만든 역사책들도 만들어졌다.(『오월춘추』, 『월절서』) 개인적으로 소흥은 두 번째이다. 이전에 루쉰을 중심으로 소흥을 다녔던 만큼,  이번에는 월왕 구천의 흔적을 중점으로 찾아보기로 생각했다. 밤늦게 도착한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소흥 시내를 돌아다녔다. 바람이 솔솔 불었고, 시내 한복판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물의 도시 소흥에 온 것이었다.

 

루쉰, 복수는 꼭 갚는다


어제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계속된 이동의 피로로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일어나니 새벽이었다. 동네를 살펴볼 요량으로 밖을 나서니 이미 햇살이 눈 부셨다. 새벽인데도 중국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집 뒤에 흐르는 강물에 식기를 씻고, 일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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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소흥의 아침

 

동네를 돌아다니다 어느 공원에 탑이 눈에 띄여, 그곳으로 갔다. 6층은 되어 보이는 높은 탑이었다. 탑에 올라가니 소흥 시의가 한눈에 보였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쭉 펼쳐진 소흥 시내를 보니 마음도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저 멀리에는 여러 산이 있었다. 그 중에는 우리가 갈 예정인 회계산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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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였던 소흥 시내 풍경


시원하게 산책을 마친 후 동칠이들과 만나서 루쉰고리를 돌아다녔다. 루쉰 가문(주周씨가문)은 소흥의 대대로 명망 있는 가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그들이 살던 집들과 거리를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루쉰이 살던 집과 그가 다녔던 서당 등을 볼 수 있었다. 루쉰은 청소년기 여기서 살았다. 그래서 루쉰의 소설에서 소흥의 흔적은 곳곳에 남겨져 있다. 소설 <공을기>가 배경이 되는 함형주점도 바로 이 루쉰고리에 있다. 루쉰을 한마디로 말하면 용서 없음이었다. 루쉰은 살면서 수많은 적을 상대했으나,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적을 용서하지 않았다. 당한 것이 있으면 꼭 갚았다. 이런 루쉰의 태도는 이 지방에서의 기질을 어느정도는 이어받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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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고거에서 동칠이들, 햇볕이 너무 강해 사람들이 밝게 나왔다!


산을 오르락 내리락! 


루쉰고리를 돌아다니면서 너무 더워 온도를 보니 37도였다! 이런 날씨에 밖을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무리. 하지만 그다음 일정은 바로 월나라의 궁전터인 푸산 공원과 그곳에 있는 월왕전과 월왕대였다. 그래서 잠시 쉬고 택시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사람이 많아 택시를 두 대로 이동했는데 서로 내린 곳이 달랐다. 푸산 공원이 꽤 커서 들어가는 입구가 여러 곳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문에 있었고, 현진이네는 정문에 있었다. 정문으로 가면 바로 월왕대와 월왕전을 볼 수 있었지만, 같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현진이네가 우리 쪽으로 왔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푸산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월왕전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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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내려준 택시 기사 덕에 동칠이들은 다시 산행!​

 

푸산 공원 곳곳에는 비익루, 용왕전 등 월나라와 연관된 건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런 건물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문종묘를 봤다. 문종은 구천의 신하로서 그를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켰지만, 후에 구천의 명에 의하여 자결하고 만다. 물론 그가 여기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백성들은 나라를 위해 힘을 쓰다 억울하게 죽은 문종을 위하여 이렇게 문종묘를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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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나라 대부 문종을 기리는 비석

 

 문종묘를 보고 산을 가로질러 월왕전에 도착했는데, 문을 닫았으니 내일 다시 오란다. 맙소사! 이전에 왔을 때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못 가다니! 실망스런 발걸음으로 소흥의 물길을 걸으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은 오전에 회계산에 올라 우임금 동상을 보고 오후에는 상해로 이동해야 했다. 내일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오전 회계산을 가기 전 아침에 나 혼자만 다시 푸산 공원에 가서 월왕전을 보겠다고 동칠이들에게 얘기했고, 동칠이들은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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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흥 중심가인 옛 월성구 주위에는 강이 에워싸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소흥 시내를 가로질러 푸산 공원을 가기로 했다. 거리를 거닐면서 추진, 차이위안페이, 왕희지 등 소흥에서 살았던 여러 인물의 흔적들을 찾아보면서 옛 성터를 두르고 있는 강을 따라 걸었다. 월성인, 회계성은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패배한 후 회계산의 치욕을 갚기 위해 만든 성이었다고 한다. 이후 대부분은 바뀌었지만 성의 큰 윤곽은 바뀌지 않았다. 이후 지도를 들고 푸산 공원으로 갔다. 일단 앞에 보이는 산을 따라 무작정 입구를 갔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지만 다시 서문으로 가고 말았다! 어제의 악몽이 떠올랐다. 동칠이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후다닥 산을 뛰어 내려가 정문에 도착했다. 산길을 뛰니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시간을 보니 아슬아슬하게 월왕대와 월왕전을 구경하고 돌아갈 시간은 됐다. 월왕전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 했다. 표를 사고 주변 마트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땀을 닦은 뒤 월왕전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도중에 표 받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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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했던 월왕전 내 길

 


복수는 자기를 낮추고 기다리는 것이다


북적거렸던 푸산 공원에 비해 이곳은 나밖에 없어 한산했다. 건물도 별것 없었다. 월왕대, 월왕전, 그리고 정자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월성의 궁궐터라고 추측되는 장소에 월왕대와 월왕전을 지은 듯 했다. 월왕전을 들어서니 실내 좌우로 오월 전쟁에 대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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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후 교만해진 부차, 그리고 그에게 간언하다 끝내 자결한 오자서


왼쪽에는 오왕 부차의 성공과 파멸이 그려져있었다. 월왕 구천을 복속시켜 아버지 합려의 복수에 성공한 그는 점차 교만해졌다. 그는 북방으로 나아가 제나라, 진(晋)나라 등과 싸우면서 패자가 되려고 했다. 오자서는 월나라를 먼저 쳐야한다고 간언을 하지만 그는 듣지 않았고, 오히려 오자서를 의심한다. 불화의 골이 깊어진 부차와 오자서, 결국 부차는 오자서에게 촉루검을 내려 자결할 것을 명령한다. 오자서도 죽은 뒤 그는 범려가 바친 미인 서시와 고소대에서 유흥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복수의 칼을 갈고닦은 구천이 부차가 북방에 있을 때 오나라의 수도였던 고소성-지금의 소주-을 공격해 태자를 죽이고 도성을 쓸어버렸다. 부차는 북방에서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지만 도성은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월나라는 점점 강력해졌고,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켰고, 부차는 자결한다. 『사기』, <월왕구천세가>에서 부차는 자결하기 전에 “저승에 있는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라고 하며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결한다. 부차의 스토리가 잘 묘사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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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눈매가 인상적인 구천, 옆에는 조그맣게 쓸개가 달려 있다.


오른쪽 그림에는 월왕 구천이 복수를 이루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가운데 구천은 독기를 품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밑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고 써져 있었다. 회계에서 치욕을 받은 그가 어떻게 했는지는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잘 나온다.


“부차가 구천을 사면해주자 구천은 월나라로 돌아가서 고통을 받으며 고심을 하는데, 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놓고서,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간에 이를 쳐다보며, 음식을 먹을 때도 이것을 핥곤 하였다.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너는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잊지 않았겠지?”라고 하였다. 스스로 밭을 갈고, 부인은 길쌈을 하며, 음식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의복은 이중으로 된 옷을 입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어 어진 이를 공경하고, 손님을 후하게 접대하며, 가난한 사람을 돕고 죽은 자를 애도하며 백성과 함께 수고를 같이 하였다.” 『사기열전 상』 <월왕구천세가>, 까치, 270쪽 


 

 이런 이야기가 그림에 잘 나와 있었다. 구천은 몸소 밭을 갈고, 어진 이를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죽은 자를 애도하며 백성과 함께 수고를 같이했다. 그림 중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구천 옆에 항시 문종과 범려가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구천은 모든 일을 할 때 이들의 말을 듣고 같이 했다. 『사기』, <월왕구천세가>에서도 구천은 복수심에 기회만 되면 오나라를 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범려와 문종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그를 말렸고, 그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었다.


복수, 자기를 단련시키는 하나의 방법  

 

내가 생각한 복수에 대한 관념과 구천이 행했던 복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복수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극대화된 것이다. 그래서 남을 해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도 해친다. 그래서 우리는 복수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구천의 복수는 회계산에서 대한 치욕을 갚기 위해서이다. 이 치욕에는 부차에 대한 분노도 포함되어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게 만든 자기 자신에 대한 치욕도 같이 들어있다. 그는 범려의 말을 듣지 않고, 섣불리 먼저 공격했다 이런 곤경을 당했다. 스스로 화를 불러온 것이었다. 다시는 이렇게 되지 않게 자기 자신을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수련이 필요하다. 무협지에서 주인공은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스승을 찾아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단련한다. 왜냐하면 복수는 자기의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내심이다. 무협지에서는 스승에게 배운 초식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분노에 못 이겨 원수와 상대하다 복수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복수는 기다림이다. 냉정하게 감정을 억누르면서 상대방의 힘과 자신의 힘이 역전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혼자서 알 수 없다. 그래서 구천에게 범려와 문종이 필요했다. 자기를 낮추고 남의 말을 듣고, 모든 수고를 백성과 같이 하는 것. 이것이 구천이 복수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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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흥 북역 광장에 서 있는 월왕 구천 동상!

 

월왕전을 나오면서 사마천이 복수를 하는 인물들을 주목해서 보왔던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복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기, 주위의 환경,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복수는 완성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강인한 추동력! 이것은 바로 개인인 그 사람에게 있었다. 한 개인에게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 이것이 사마천이 복수를 통해 봤던 인간의 놀라움은 아니었을까.


회계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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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릉과 회계산 올라가는 길. 무엇보다 더위에 모두 힘들어했다​


이후 동칠이들과 만나서 회계산으로 갔다. 소흥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회계산은 우임금이 치수 사업을 마치고 공적을 가리기 위해서 이곳에 모여서 회계(會稽)를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후에 우임금이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하는데, 황하 유역에 있었던 하나라의 왕이 왜 여기에까지 와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기』에서는 월나라가 우임금의 후예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 자신의 족보를 높이기 위해 월나라 왕들이 조작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회계산에 도착하니 한창 여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산 위에는 커다란 우임금 동상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계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대나무로 이어진 숲길이었다. 여간 더웠던 게 아닌지라 올라가는 내내 우리는 비 오듯 땀이 흐르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조금 가다 주저앉기 일쑤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올라가자 마침내 동상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컸다. 그곳에 서서 보니 소흥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였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쉬면서 소흥 시내를 바라보았다. 탁 트이는 전경에 마음은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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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산과 그 위에 있던 우왕 동상,

 

 지금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평온한 여기서 2500년 전 구천은 커다란 치욕을 맛보았고, 이를 갚기 위해 20년 넘게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였다. 구천의 복수는 단순히 남에게 하는 복수가 아닌 자기 완성을 위한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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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었던 그만큼 좋았던 회계산 올라가는  숲길에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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